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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혼치 코덱스(Rohonc Codex), 정체불명의 문자로 가득한 수백 페이지의 책은 누가 만들었을까?

by 밀크럽려니 2026. 8. 26.

세계에는 글자가 분명하게 남아 있는데도 그 내용을 읽을 수 없는 책들이 존재합니다. 이번에는 풀리지 않은 문자와 암호 로혼치 코덱스(Rohonc Codex), 정체불명의 문자로 가득한 수백 페이지의 책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앞서 살펴본 보이니치 필사본이 대표적이지만, 유럽에는 그에 못지않게 기묘한 또 하나의 미해독 필사본이 있습니다. 작은 책의 페이지마다 낯선 기호가 빽빽하게 적혀 있고, 글 사이사이에는 전쟁과 종교 의식, 사람들의 모습처럼 보이는 삽화가 등장합니다. 문제는 어떤 문자로 쓰였는지, 어떤 언어를 기록했는지,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로 로혼치 코덱스(Rohonc Codex)입니다. 로혼치 코덱스라는 이름은 이 책이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던 로혼츠(Rohonc)라는 지역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오늘날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의 레히니츠(Rechnitz)에 해당합니다. 19세기 전반 헝가리 귀족 바티아니 가문의 장서가 헝가리 과학아카데미에 기증되면서 이 기묘한 책도 학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펼쳐본 연구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페이지를 가득 채운 글자가 라틴 문자도 아니고, 그리스 문자도 아니며, 당시 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문자 체계와도 쉽게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점은 사용된 기호의 종류가 매우 많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알파벳이라면 보통 수십 개 정도의 기호로 충분하지만 로혼치 코덱스에서는 훨씬 다양한 기호와 변형이 관찰됩니다. 그렇다면 각각의 기호가 하나의 글자가 아니라 음절이나 단어 전체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같은 문자를 여러 형태로 변형해 사용한 암호일까요? 혹은 애초에 의미가 없는 가짜 문자일까요? 삽화 역시 수수께끼를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책에는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종교적 장면이 등장하는가 하면, 전투와 군인, 건물, 다양한 상징이 함께 나타납니다. 일부 그림만 보면 기독교 관련 문서처럼 보이지만 다른 종교나 문화권의 요소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장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로혼치 코덱스를 둘러싸고 성경 이야기, 종교적 연대기, 역사 기록, 비밀 종파의 문서, 암호문, 심지어 정교한 위작이라는 주장까지 등장했습니다. 수백 페이지에 걸쳐 글이 남아 있으니 파이스토스 원반보다 해독하기 쉬울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료가 많다는 것과 해독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로혼치 코덱스는 지금도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인 질문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어느 방향으로 읽어야 하는지, 기호 하나를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어떤 언어를 가정해야 하는지부터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작은 책에는 도대체 무엇이 적혀 있는 것일까요?

로혼치 코덱스(Rohonc Codex), 정체불명의 문자로 가득한 수백 페이지의 책은 누가 만들었을까?
로혼치 코덱스(Rohonc Codex), 정체불명의 문자로 가득한 수백 페이지의 책은 누가 만들었을까?

수백 페이지를 가득 채운 정체불명의 기호, 로혼치 코덱스는 어디에서 나타났을까?

로혼치 코덱스는 약 450쪽에 달하는 작은 필사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책의 크기는 비교적 작지만 페이지마다 정체불명의 글이 촘촘하게 기록되어 있고 곳곳에 삽화가 들어 있습니다. 이 책이 현대 연구자들에게 알려진 중요한 계기는 1838년입니다. 헝가리 귀족 구스타프 바티아니(Gusztáv Batthyány)가 자신의 장서를 헝가리 과학아카데미에 기증하면서 로혼치 코덱스도 함께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이전의 역사가 매우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누가 처음 이 책을 만들었는지, 언제 바티아니 가문의 장서에 들어왔는지, 어디에서 제작되었는지 확실하게 이어지는 기록이 부족합니다. 오래된 문서를 연구할 때 소유권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책이 어느 수도원에서 만들어졌고 이후 누구에게 전달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면 작성 지역과 언어를 추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혼치 코덱스는 이런 역사적 연결고리가 부족합니다. 종이 자체에 대한 연구는 한 가지 단서를 제공합니다. 종이의 특징과 워터마크 등을 근거로 재료가 16세기 전반 무렵의 이탈리아산 종이일 가능성이 거론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종이가 만들어진 시기와 글이 적힌 시기는 반드시 같지 않습니다. 오래 보관된 종이에 나중에 글을 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종이의 연대만으로 필사본의 정확한 작성 시기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문자입니다. 연구자들은 로혼치 코덱스에 매우 많은 종류의 기호가 사용되었다고 지적해 왔습니다. 분류 방식에 따라 숫자는 달라질 수 있지만 일반적인 알파벳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기호가 나타납니다. 만약 기호 하나가 하나의 음소를 나타낸다면 이렇게 많은 기호가 필요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하나의 기호가 하나의 음절을 나타낼 수도 있고, 하나의 단어 전체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기호가 같은 소리를 나타내도록 만든 복잡한 암호 체계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대로 실제로는 기본 기호가 많지 않은데 필체와 위치에 따른 변형을 서로 다른 문자로 잘못 구분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글을 읽는 방향도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문자 배열과 삽화의 위치 등을 분석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문자 체계가 해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읽기 방향을 완전히 확정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글 책을 보면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읽어야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문자에서는 그 기본적인 규칙조차 연구 대상이 됩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문자가 무작위적인 낙서처럼 보이지만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정 기호나 기호 조합이 반복되고 일정한 구조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만약 누군가 아무 의미 없이 페이지를 채웠다면 반복 패턴이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불규칙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로혼치 코덱스에서는 적어도 어떤 규칙을 가지고 글을 작성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냥 의미 없는 낙서'라는 설명만으로 미스터리가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자보다 더 직접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삽화입니다. 책에는 수십 점이 넘는 작은 그림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과 건물, 전투 장면처럼 보이는 그림이 있고 십자가나 종교 의식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삽화를 이용해 글의 내용을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문제는 그림 역시 해석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림 속 상징이 특정 종교나 사건을 의미하는지 확정하기 어렵고, 우리가 현대적인 시각으로 그림의 의미를 잘못 해석할 위험도 있습니다. 결국 로혼치 코덱스는 책의 재료와 문자, 삽화까지 많은 단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느 하나도 결정적인 열쇠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인가 비밀 암호인가, 수많은 해독 주장은 왜 인정받지 못했을까?

로혼치 코덱스가 알려진 이후 여러 사람이 해독에 도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언어가 후보로 등장했습니다. 헝가리어를 비롯해 여러 유럽 및 주변 지역 언어와 연결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종교적인 암호 체계나 독자적인 문자 체계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문제는 서로 다른 연구자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같은 기호를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종교 문서로 읽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역사 기록이나 연대기로 읽힙니다. 이것은 미해독 문자를 연구할 때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미지의 문자를 해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럴듯한 번역'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규칙'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기호를 A라는 소리로 읽었다면 다른 페이지에서도 같은 조건에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특정 기호가 '왕'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면 왕과 관련된 다른 문맥에서도 일관되게 등장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몇 문장을 자연스럽게 번역했다고 해서 해독에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복잡한 기호 체계에 원하는 규칙을 적용하면 우연히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해독은 연구자가 원하는 문장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문서 자체가 요구하는 규칙을 찾아내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로혼치 코덱스의 경우 이 검증 과정이 특히 어렵습니다. 원문과 비교할 수 있는 번역본이 없고, 같은 문자 체계로 작성된 다른 문서도 확실하게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로제타석처럼 같은 문장이 이미 알려진 언어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면 사람 이름이나 지명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혼치 코덱스에는 그런 기준점이 없습니다. 삽화를 이용한 해석 역시 조심해야 합니다. 십자가처럼 보이는 상징이 있다고 해서 바로 기독교 문서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기독교와 관련된 책이라고 해도 성경 본문인지, 기도문인지, 성인들의 이야기인지, 역사 연대기인지 알 수 없습니다. 특정 그림이 예수의 생애를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 옆의 글이 그림을 설명하는 문장인지,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반대로 삽화가 중요한 단서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정 기호 묶음이 같은 인물 주변에서 반복된다면 그 인물의 이름이나 칭호일 수 있습니다. 특정 전투 장면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면 도시나 군대, 전쟁을 의미할 가능성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문자와 삽화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비교한다면 조금씩 구조를 좁힐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가능성은 로혼치 코덱스가 일반적인 문자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암호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작성자가 기존 언어를 의도적으로 숨기기 위해 기호를 변환했다면 단순한 문자 대응만으로는 읽을 수 없습니다. 특히 하나의 글자를 여러 기호로 바꾸는 동음이의 암호(homophonic cipher)와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면 기호의 종류가 많다는 특징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래 언어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자 하나를 하나의 암호 기호로만 바꾸면 빈도 분석을 통해 쉽게 추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문자를 여러 기호로 나누어 표현하면 빈도가 분산되어 해독이 어려워집니다. 물론 이것 역시 가능성일 뿐 아직 확정된 설명은 아닙니다. 이처럼 로혼치 코덱스에는 여러 해독 주장이 등장했지만 학계에서 널리 인정받는 완전한 해독은 아직 없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동일합니다. 하나의 해독 규칙으로 문서 전체를 일관되게 설명하고, 다른 연구자들이 같은 방법을 적용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수준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잊힌 언어인가 정교한 위작인가, 로혼치 코덱스의 가장 큰 미스터리

로혼치 코덱스의 정체를 둘러싼 가설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애초에 진짜 의미를 가진 문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입니다. 즉,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든 위작 또는 가짜 문서일 가능성입니다. 이 가설에서 자주 언급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19세기 헝가리의 고서 수집가이자 위조자로 알려진 샤무엘 네메시(Sámuel Literáti Nemes)입니다. 그는 여러 역사적 문서와 유물을 위조한 것으로 의심받거나 알려진 인물이며, 로혼치 코덱스가 세상에 알려진 시기와도 어느 정도 겹칩니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네메시가 이 책을 만들었을 가능성을 의심해 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결정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위조를 했던 사람이 당시 존재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이 책을 만들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주장입니다. 실제 위작임을 입증하려면 필체와 잉크, 재료, 제작 방식, 소유 기록 등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만약 로혼치 코덱스가 위작이라면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왜 누군가는 수백 페이지에 걸쳐 정체불명의 기호를 반복해서 적고 수많은 삽화까지 그렸을까요? 단순한 장난이라고 보기에는 작업량이 상당합니다. 사람을 속여 금전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왜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유명 고대 문자나 언어를 흉내 내지 않고 이렇게 독특한 문자 체계를 만들었을까요? 오히려 진짜 고문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지의 문자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다면 그 위조자는 상당히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셈입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의미는 있지만 일반적인 언어 기록 방식과 전혀 다른 문서라는 것입니다. 종교 집단 내부에서만 사용한 약어나 비밀 문자일 수도 있고, 특정 공동체가 개발한 독자적인 표기 체계일 수도 있습니다. 중세와 근세 유럽에는 연금술과 종교, 외교, 군사 분야에서 비밀 기호와 암호가 실제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알려지지 않은 암호 체계가 존재했다는 것 자체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암호의 열쇠가 사라졌다면 현대 연구자에게는 미지의 언어를 해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현대의 컴퓨터 분석은 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줍니다. 모든 기호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면 특정 기호의 출현 빈도, 서로 함께 등장하는 조합, 문장의 시작과 끝에서 나타나는 패턴 등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연언어를 암호화한 문서라면 통계적으로 일정한 구조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의미 없는 기호를 기계적인 규칙으로 생성했다면 자연언어와 다른 특징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통계만으로 의미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규칙적인 패턴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언어라는 뜻은 아니며, 반대로 이상한 패턴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가짜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정교한 암호라면 자연언어의 통계적 특징이 크게 변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로혼치 코덱스를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문서 내부의 통계적 분석과 함께 외부의 역사적 증거입니다. 누가 이 책을 소유했는지, 어떤 경로로 바티아니 가문의 장서에 들어왔는지, 종이와 잉크는 어느 시기의 것인지, 삽화에 등장하는 의복과 건축물은 어느 시대와 지역의 특징을 보이는지 등을 함께 분석해야 합니다. 어쩌면 해독의 결정적인 열쇠는 문자 속에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도서관에서 로혼치 코덱스와 같은 기호로 작성된 편지가 발견되거나, 책을 제작한 사람의 기록이 나타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동일한 문자와 이미 알려진 언어가 함께 적힌 자료가 발견된다면 로제타석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그런 자료가 영원히 발견되지 않는다면 이 책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침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백 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데 단 한 문장도 이해할 수 없는 책

로혼치 코덱스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책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책의 페이지를 넘길 수 있습니다. 글자가 어디에 적혀 있는지도 볼 수 있고, 같은 기호가 반복되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삽화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모든 것을 연결해주는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로혼치 코덱스는 보이니치 필사본과 매우 닮았습니다. 두 책 모두 상당한 분량의 텍스트와 삽화가 존재하지만 문자와 언어의 정체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문서는 중요한 차이도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니치 필사본은 양피지의 연대 측정과 문서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적어도 중세 후기 유럽에서 제작된 물리적 문서라는 점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존재합니다. 반면 로혼치 코덱스는 작성 시기와 저자, 소유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 크고 위작 가능성까지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로혼치 코덱스를 둘러싼 질문은 두 단계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무엇이라고 적혀 있는가?"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두 번째 질문이 있습니다. "애초에 의미가 있는 내용이 적혀 있는가?" 만약 진짜 언어나 암호를 기록한 문서라면 우리는 아직 열쇠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반대로 의미 없는 위작이라면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답을 찾아온 셈이 됩니다. 그런데 위작으로 밝혀진다고 해도 로혼치 코덱스의 미스터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왜 이렇게 많은 페이지를 채웠는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정체불명의 문자와 종교적인 삽화를 결합했는지라는 새로운 질문이 남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어느 날 새로운 자료 하나가 모든 상황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오래된 도서관의 서랍에서 같은 문자로 작성된 짧은 편지가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특정 인물의 일기에서 "오늘 새로운 비밀 문자로 책을 작성했다"는 기록이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현대적인 재료 분석과 디지털 문자 연구를 통해 제작 시기와 기호 구조가 훨씬 명확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로혼치 코덱스가 잊혀진 언어의 마지막 기록인지, 비밀을 숨기기 위한 암호문인지, 아니면 역사상 가장 공들여 만든 가짜 책 가운데 하나인지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재 로혼치 코덱스는 여전히 수백 페이지에 걸쳐 침묵하고 있습니다. 글자는 있습니다. 반복되는 패턴도 있습니다. 그림도 있습니다. 책 자체도 우리 눈앞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글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열쇠만 없습니다. 그래서 로혼치 코덱스는 우리에게 아주 흥미로운 질문을 남깁니다.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책에 정말 의미가 존재한다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한 로혼치 코덱스는 세계에서 가장 기묘한 미해독 필사본 가운데 하나로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추천 순서에 따라 '크립토스(Kryptos), CIA 본부 한가운데 설치된 암호문은 왜 마지막 부분만 30년 넘게 풀리지 않았을까?'를 주제로, 미국 CIA 본부에 설치된 조각 작품 속 네 개의 암호문과 지금까지 완전히 해독되지 않은 마지막 K4 암호의 비밀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