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한가운데 외딴 섬 하나가 있습니다. 오늘은 풀리지 않은 문자와 암호 론고롱고(Rongorongo), 이스터섬에 남겨진 읽을 수 없는 문자에 대해서 알아 볼 예정입니다.
거대한 석상 모아이(Moai)로 유명한 이스터섬, 현지 이름으로 라파누이(Rapa Nui)입니다. 사람들은 이 섬을 떠올리면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거대한 석상을 먼저 생각하지만, 라파누이에는 모아이 못지않게 흥미로운 또 하나의 미스터리가 남아 있습니다. 바로 론고롱고(Rongorongo)입니다. 론고롱고는 나무판에 새겨진 정체불명의 기호 체계로, 사람과 동물, 식물, 물고기, 도구 등을 연상시키는 작은 그림들이 일정한 순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어떤 기호는 사람이 팔을 들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고, 어떤 것은 새나 물고기와 닮았으며, 또 다른 기호는 식물이나 기하학적인 모양처럼 보입니다. 수백 개의 기호가 반복되기 때문에 단순한 장식이라고 보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론고롱고의 내용을 확실하게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이 문자를 읽을 수 있었던 전통이 19세기의 급격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라파누이는 외부 세계와 접촉한 이후 질병과 노예 사냥, 인구 감소, 문화적 단절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론고롱고를 읽고 가르치던 사람들이 사라졌다면 문자 자체는 남았지만 해독법은 함께 사라졌을 수 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론고롱고 자료 역시 많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나무판은 수십 점에 불과하며, 그중 상당수는 섬 밖의 박물관과 연구기관에 흩어져 있습니다. 긴 문서가 많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언어와 함께 적힌 이중언어 자료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론고롱고는 인더스 문자나 선형문자 A처럼 비교 자료 부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자에는 한 가지 특별한 질문이 더 따라붙습니다. 론고롱고가 정말 언어를 기록한 완전한 문자 체계였을까요? 아니면 노래와 족보, 의식의 순서를 기억하기 위한 일종의 기억 보조 기호였을까요? 일부 연구자는 론고롱고가 실제 문자를 기록했다고 보고, 다른 연구자는 제한적인 상징 체계였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진짜 문자였다면 더욱 놀라운 질문이 생깁니다. 태평양의 외딴 섬에서 독자적인 문자 체계가 만들어진 것일까요? 아니면 외부와의 접촉 이후 문자의 개념을 접한 뒤 라파누이 사람들이 새로운 기록 체계를 개발한 것일까요? 론고롱고는 단순히 읽지 못하는 문자가 아닙니다. 문자란 어떻게 탄생하고, 하나의 사회가 문자를 잃어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입니다.

모아이의 섬에서 발견된 수수께끼의 나무판, 론고롱고는 무엇일까?
론고롱고라는 이름은 라파누이 언어에서 낭송하거나 암송한다는 의미와 관련된 표현으로 해석됩니다. 이 이름 자체가 문자의 사용 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합니다. 단순히 조용히 읽는 책이 아니라 누군가 앞에서 소리 내어 읽거나 외우는 데 사용된 기록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알려진 론고롱고 자료는 주로 나무판이나 막대 형태의 물체에 새겨져 있습니다. 판의 표면에는 작은 기호들이 줄을 이루어 배열되어 있으며, 같은 기호가 여러 번 반복됩니다. 그런데 읽는 방식이 매우 독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연구자들은 론고롱고를 ‘역방향 우경식’ 또는 ‘역전 부스트로페돈(reverse boustrophedon)’ 방식으로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쉽게 말해 한 줄을 읽은 뒤 판을 180도 돌려 다음 줄을 읽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같은 방향에서 판을 보면 한 줄의 기호는 똑바로 보이지만 다음 줄의 기호는 거꾸로 보이는 특징이 나타납니다. 이는 세계의 문자 체계 가운데에서도 매우 특이한 배열 방식입니다. 론고롱고의 기호는 단순한 선이나 점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몸과 비슷한 형상, 머리가 긴 사람, 팔을 든 사람, 새, 물고기, 거북이, 식물, 도구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그림문자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기호의 모양이 실제 의미와 같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고대 문자에서 그림의 형태와 실제 언어적 의미는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처럼 보이는 기호가 ‘사람’이라는 단어를 뜻할 수도 있지만 사람의 이름, 직책, 음절, 특정 소리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수백 종류의 기본 기호와 변형형이 존재한다고 분류해 왔지만, 어디까지를 서로 다른 문자로 볼 것인지에도 논쟁이 있습니다. 같은 기호가 필기 방식이나 재료 상태에 따라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인지, 실제로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별개의 기호인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론고롱고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유럽인이 라파누이를 처음 방문한 것은 1722년이지만 당시 기록에는 론고롱고에 대한 확실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18세기 후반 스페인 원정대가 섬 주민들에게 문서에 표시를 남기도록 했을 때 현지인들이 독특한 기호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종종 논의되지만, 이것이 론고롱고 문자와 직접 연결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본격적으로 론고롱고 나무판의 존재가 외부 세계에 알려진 것은 19세기였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 시기가 라파누이 사회가 극심한 혼란을 겪은 시기였다는 점입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질병으로 인구가 크게 줄어들었고, 1860년대에는 페루 노예 사냥꾼들이 많은 섬 주민을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전통을 알고 있던 지도자와 지식인들이 이 과정에서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후 선교 활동과 문화적 변화까지 겹치면서 섬의 전통 지식 체계는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만약 론고롱고를 읽는 능력이 특정 계층이나 소수 전문가에게만 전승되었다면 몇 세대 만에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읽는 것은 수많은 사람이 같은 체계를 공유하고 학교와 책을 통해 끊임없이 전승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수십 명밖에 없고 그들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문자 체계 자체가 짧은 시간 안에 잊힐 수도 있습니다. 론고롱고의 비극적인 미스터리는 바로 이 가능성에서 시작됩니다.
노래와 족보를 기록했을까, 아니면 진짜 문자였을까?
론고롱고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 완전한 문자 체계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만약 론고롱고가 실제 언어를 기록했다면 우리는 기호의 소리와 단어, 문법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노래나 의식, 족보를 기억하기 위한 기억 보조 장치였다면 접근 방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호가 한 단어를 직접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부분에서 조상 이야기를 시작하라”거나 “이때 특정 노래를 부르라”는 식의 기억 신호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체계는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매우 유용하지만, 전통을 모르는 외부인이 기호만 보고 내용을 복원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론고롱고가 문자라는 주장에는 반복되는 기호 배열이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일부 나무판에서는 상당히 비슷한 기호 묶음이 반복되고, 특정 위치에서 자주 나타나는 기호도 관찰됩니다. 이런 규칙성은 실제 언어에서 볼 수 있는 문법적 구조와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유명한 마마리 판(Mamari Tablet)의 일부 구간은 달의 위상이나 달력과 관련된 기록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습니다. 특정한 초승달이나 달을 연상시키는 기호와 반복 구조가 음력 주기를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해석이 맞다면 론고롱고에는 적어도 일정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기능이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지만 달력 해석만으로 전체 문자 체계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구간이 천문학적 주기와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다른 문서의 기호가 어떤 언어적 의미를 가진지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또 다른 가설은 족보와 왕의 계보를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폴리네시아 사회에서 조상의 계보는 매우 중요한 지식이었습니다. 누가 누구의 후손인지에 따라 사회적 권위와 토지에 대한 권리가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론고롱고 나무판은 지배자의 계보와 중요한 조상의 이름을 보존하는 도구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종교 의식이나 창조 신화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라파누이에는 다양한 전통 노래와 신화, 의식이 존재했고, 이를 기억하고 전달하는 사람들의 역할도 중요했습니다. 론고롱고가 이런 문화적 지식을 보존하기 위한 장치였다면 낭송과 관련된 이름 역시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결정적인 문제가 나타납니다. 론고롱고와 확실하게 대응되는 구전 텍스트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만약 “이 나무판은 특정 창조 신화를 기록한 것이다”라는 확실한 전승이 남아 있었다면 기호와 구전 내용을 비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자 해독 전통이 끊어진 뒤 수집된 증언들은 서로 일관되지 않거나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19세기 후반 몇몇 연구자가 라파누이 주민에게 론고롱고 판을 읽어달라고 요청한 사례도 알려져 있지만, 당시 제시된 낭송이 실제 문자와 정확히 대응하는지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미 읽기 전통이 대부분 사라진 뒤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론고롱고가 완전한 문자였는지, 제한적인 상징 체계였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 남아 있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명칭의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독자적인 문자라면 라파누이는 외부의 문자 문화와 크게 떨어진 환경에서 문자 체계를 발전시킨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왜 해독할 수 없을까, 론고롱고가 잃어버린 결정적인 열쇠
론고롱고가 풀리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자료가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진품으로 인정되는 론고롱고 나무판은 대략 수십 점 이하이며, 보통 20여 점 안팎의 주요 자료가 연구됩니다. 게다가 상당수는 완전한 상태가 아닙니다. 나무가 갈라지거나 마모되어 기호 일부가 손상되었고, 원래 훨씬 많은 자료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기록이 발견된 맥락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적 발굴에서 정확한 층위와 함께 발견된 문서라면 제작 시기와 용도를 추정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현존하는 많은 론고롱고 판은 19세기에 수집되어 외부로 반출되었기 때문에 원래 어디에 보관되었고 누가 사용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언어 자체입니다. 오늘날 라파누이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선형문자 A나 인더스 문자보다 유리해 보일 수 있습니다. 만약 론고롱고가 오래된 라파누이 언어를 기록한 것이라면 현대 라파누이어와 비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언어가 변화했을 가능성이 있고, 기호가 어떤 음가를 나타내는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론고롱고가 음소나 음절을 기록하는 방식인지, 단어 전체나 의미를 나타내는 표의적 방식인지조차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 문제는 이중언어 자료가 없다는 것입니다. 론고롱고 기호와 스페인어, 프랑스어 또는 다른 폴리네시아 언어가 같은 내용으로 함께 기록된 문서가 발견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로제타석과 같은 결정적인 자료는 없습니다. 다섯 번째 문제는 론고롱고의 기원에 대한 논쟁입니다. 한 가지 가설은 유럽인과 접촉하기 이전부터 라파누이에 문자 전통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론고롱고는 폴리네시아 세계에서 매우 독특한 독립 문자 발명의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가설은 18세기 유럽인들이 문자로 서명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본 뒤 라파누이 사람들이 새로운 기록 체계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론고롱고는 외부에서 “문자를 기록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였지만 기호 자체는 현지에서 독창적으로 개발한 체계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를 판단하려면 유럽 접촉 이전의 확실한 론고롱고 자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나무판은 연대를 직접 확정하기가 복잡합니다. 오래된 나무를 나중에 사용했을 수도 있고, 판 자체의 나이와 글자를 새긴 시기가 다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연구에서는 디지털 촬영과 3D 스캐닝을 이용해 마모된 기호를 다시 읽고, 컴퓨터를 이용해 기호의 반복 패턴과 위치를 분석합니다. 연구자들은 서로 다른 나무판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문장이 반복되는지, 어떤 기호가 앞이나 뒤에서 자주 등장하는지 비교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론고롱고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결정적인 번역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컴퓨터는 “이 두 기호가 자주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은 알려줄 수 있지만 그것이 “왕의 이름”인지 “달”인지 “노래의 시작”인지는 알려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미를 확정하려면 외부의 기준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론고롱고를 해독할 가장 강력한 열쇠는 새로운 알고리즘보다 새로운 유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느 동굴이나 오래된 주거지에서 유럽 접촉 이전으로 확실하게 연대가 확인되는 론고롱고 판이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초기 선교사나 탐험가의 기록 속에서 기호와 라파누이 단어를 함께 적은 사본이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자료가 나타난다면 수십 년 동안 정체되어 있던 연구가 크게 바뀔 수 있습니다.
문자는 남았지만 그것을 읽던 사람들은 사라졌다
론고롱고의 미스터리가 다른 미해독 문자보다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문자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인간의 역사 때문입니다. 선형문자 A는 3,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관련 언어가 사라지면서 읽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더스 문자는 문명 자체가 수천 년 전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론고롱고는 비교적 최근인 19세기까지도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류는 어쩌면 불과 몇 세대 차이로 해독의 열쇠를 놓쳤을지도 모릅니다. 외부인들이 조금 더 일찍 관심을 가지고 정확한 읽기 방식과 발음을 기록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론고롱고를 읽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질병과 노예 사냥, 인구 감소, 전통문화의 붕괴가 너무 빠르게 일어났습니다. 론고롱고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사라졌고, 그들과 함께 문자에 대한 지식도 사라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문자와 문화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기록을 남기면 정보가 영원히 보존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기록은 그것을 읽는 방법이 함께 전해질 때만 의미를 가집니다. 라파누이 사람들이 나무판에 수백 개의 기호를 남겼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기호의 모양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소리로 읽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왕들의 족보가 적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아이를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섬의 창조 신화와 항해 이야기, 별을 보고 바다를 건넜던 조상들의 기억이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실용적인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물품 목록이나 의식 일정, 농경 달력처럼 일상적인 기록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쪽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론고롱고가 실제로 언어를 완전하게 기록한 문자 체계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세계 문자사의 중요한 부분을 다시 써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문자 체계는 역사적으로 소수의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발명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중국, 메소아메리카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만약 라파누이에서도 외부의 직접적인 문자 모델 없이 독자적인 기록 체계가 만들어졌다면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는 과정에 대한 중요한 새로운 사례가 됩니다. 반대로 유럽과의 접촉 이후 만들어진 문자라 하더라도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외부에서 문자라는 아이디어를 접한 한 사회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에 맞는 독창적인 기호 체계를 만들어냈다는 사실 역시 매우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결국 론고롱고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가?”라는 질문만이 아닙니다. “누가 이 문자를 만들었는가?”, “왜 만들었는가?”, “어떻게 읽었는가?”, “왜 그 지식이 그렇게 빠르게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의 박물관에 흩어진 론고롱고 나무판은 여전히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새, 물고기와 식물을 닮은 작은 기호들이 줄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진으로 확대할 수도 있고 3D 데이터로 기록할 수도 있으며 컴퓨터로 수천 번 비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기호를 라파누이 사람들이 들었을 말과 이야기로 되돌리지는 못했습니다. 글자는 살아남았습니다. 나무판도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읽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론고롱고는 단순한 미해독 문자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가 자신의 기록 방법을 잃어버렸을 때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입니다. 언젠가 새로운 기록이나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된다면 우리는 다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론고롱고는 수수께끼의 그림문자가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침묵했던 라파누이 사람들의 기록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추천 순서에 따라 '빈차 기호(Vinča Symbols), 문자보다 오래되었을지도 모르는 7,000년 전 유럽의 기호는 정말 세계 최초의 문자였을까?'를 주제로, 신석기 시대 발칸반도의 토기와 유물에 남은 수수께끼의 기호와 그것을 문자로 볼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