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년이 넘은 점토판 하나가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표면에는 수많은 기호와 숫자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그 기록을 보고 양이나 곡물, 물품의 수량을 계산한 회계 문서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오늘은 프로토엘람 문자(Proto-Elamite), 숫자는 읽을 수 있는데 문장은 읽지 못하는 5,000년 전 고대 이란의 기록에 대해서 알아 볼 예정입니다.
어떤 표시가 숫자인지도 알고 수량을 계산하는 방법도 상당 부분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그 숫자 옆에 적힌 글자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읽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장부에 ‘50’이라는 숫자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50개의 무엇을 기록했는지, 누구에게 지급했는지, 어느 지역에서 가져왔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대 이란에서 발견된 프로토엘람 문자(Proto-Elamite)가 가진 독특한 미스터리입니다. 프로토엘람 문자는 대략 기원전 4천년기 말에서 기원전 3천년기 초에 오늘날의 이란 지역에서 사용된 기록 체계입니다. 특히 고대 도시 수사(Susa)를 비롯한 여러 유적에서 점토판이 발견되었습니다. 놀랍게도 프로토엘람 문자로 기록된 점토판은 한두 개가 아닙니다. 상당한 수의 자료가 남아 있어 연구자들은 기호의 반복과 숫자 체계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완전한 해독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기록이 어떤 언어를 표현했는지 확실하지 않고, 다른 문자로 같은 내용을 적은 이중언어 자료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복잡한 문제도 있습니다. 프로토엘람 문자가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완전한 문자 체계였는지, 아니면 숫자와 물품, 사람, 기관 같은 제한된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행정용 기록 체계였는지도 논쟁의 대상입니다. 따라서 프로토엘람 문자를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고대의 암호를 푸는 작업이 아닙니다. 인간이 왜 문자를 만들었는지, 최초의 기록이 문학이나 역사보다 왜 회계와 행정에서 먼저 발전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문자가 왕의 업적이나 신화, 종교적인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탄생했을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훨씬 현실적인 이유가 등장합니다. 곡물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가축이 몇 마리인지, 노동자에게 얼마를 지급했는지, 창고에 어떤 물품이 보관되어 있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이 필요했습니다. 프로토엘람 점토판 역시 그런 행정 세계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5,000년 전 고대 이란의 관리들은 이 점토판에 무엇을 기록하고 있었을까요? 우리는 왜 숫자는 이해하면서 그 옆의 기호는 읽지 못하는 것일까요?

5,000년 전의 회계 장부, 프로토엘람 문자는 왜 만들어졌을까?
프로토엘람 문자가 등장한 시대를 이해하려면 당시 서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던 거대한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원전 4천년기 후반 메소포타미아와 이란 지역에서는 정착지가 커지고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작은 농촌 공동체를 넘어 훨씬 큰 도시와 행정 조직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전에는 필요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백 명, 수천 명이 생산하는 곡물과 가축, 직물, 노동력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작은 마을이라면 누가 양을 몇 마리 가지고 있는지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창고에 수백 개의 곡물 자루가 들어오고 여러 지역에서 가축과 물품이 이동한다면 인간의 기억만으로는 관리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얼마를 가져왔고, 누구에게 얼마를 지급했으며, 창고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기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초기 문자와 기록 체계의 탄생은 행정과 회계의 발전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러한 필요 속에서 초기 설형문자로 발전하는 기록 체계가 등장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오늘날의 이란 지역에서도 독특한 기록 방식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프로토엘람 문자입니다. 이름에 ‘엘람(Elam)’이라는 표현이 들어가지만 여기에는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프로토엘람 문자가 훗날의 엘람어를 기록했다고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발견 지역과 후대 엘람 문명과의 지리적 관계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지, 문자에 기록된 언어가 실제로 엘람어의 조상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프로토엘람 문자를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름 때문에 이미 언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우리는 이 기록을 작성한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조차 확실히 모릅니다. 프로토엘람 문자가 기록된 대표적인 장소 가운데 하나가 수사입니다. 수사는 오늘날 이란 남서부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수천 년 동안 중요한 정치·경제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이곳을 비롯해 이란 고원 여러 지역에서 프로토엘람 점토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기록 체계가 단순히 한 도시의 개인적인 실험이 아니라 비교적 넓은 행정 네트워크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점토판을 살펴보면 숫자 기호와 함께 사람이나 동물, 물건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기호들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동물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기호 옆에 숫자가 기록되어 있다면 해당 동물의 수량을 나타낸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곡물이나 다른 상품을 표시한 것으로 보이는 기호도 존재합니다. 바로 이런 구조 때문에 프로토엘람 기록이 행정 및 회계 문서였다는 사실은 비교적 강하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숫자 체계가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어떤 물건을 세든 같은 숫자를 사용합니다. 사과 10개도 10이고 자동차 10대도 10입니다. 하지만 고대 회계 체계에서는 물품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수량 체계나 단위가 사용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곡물을 셀 때와 동물을 셀 때, 면적이나 부피를 기록할 때 서로 다른 단위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프로토엘람 점토판에서도 여러 수 체계가 확인되며 연구자들은 반복되는 계산 구조를 분석해 상당 부분을 이해해 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점토판에 수량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는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단계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숫자는 알겠는데 그 숫자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장부에서 ‘30’이라는 숫자는 읽을 수 있지만 옆에 적힌 상품명이 정체불명의 문자라면 그 기록 전체를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때문에 프로토엘람 문자는 세계의 미해독 문자 가운데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기록의 목적과 계산 방식의 일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기록을 작성한 사람들의 언어적 정보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습니다.
숫자는 아는데 단어를 모른다, 수많은 점토판이 있어도 해독되지 않는 이유
프로토엘람 문자에는 상당한 양의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수천 년 동안 해독되지 않았을까요? 보이니치 필사본처럼 한 권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파이스토스 원반처럼 비교할 자료가 거의 없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프로토엘람 기록 대부분이 매우 제한된 종류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상당수는 행정과 회계 관련 기록으로 보입니다. 반복되는 숫자와 물품, 사람이나 기관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기호가 나타나지만 긴 서술문은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입니다. 언어를 해독하려면 다양한 문장이 필요합니다. “왕이 도시를 정복했다”, “누구의 아들이 신에게 이것을 바쳤다”처럼 사람 이름과 동사, 지명, 문법 구조가 반복되면 단어 사이의 관계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부에는 ‘곡물-30-사람A’처럼 제한적인 정보만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록은 회계 업무에는 충분하지만 수천 년 뒤 언어를 복원하려는 연구자에게는 매우 부족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이중언어 자료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로제타석에는 같은 내용이 서로 다른 문자 체계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읽을 수 있는 그리스어와 이집트 문자를 비교하면서 사람 이름과 반복되는 표현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로토엘람 문자에는 그런 행운이 아직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같은 회계 기록이 초기 메소포타미아 문자와 프로토엘람 문자로 함께 적힌 점토판이 발견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숫자와 상품, 사람 이름을 서로 비교하면서 기호의 의미를 추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그런 결정적인 ‘프로토엘람의 로제타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어떤 언어를 기록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문자 해독에서 언어를 안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입니다. 선형문자 B를 해독할 때도 그것이 그리스어일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많은 기호의 의미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프로토엘람 문자에서는 출발점이 없습니다. 훗날 이 지역에서 사용된 엘람어와 연결하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등장하지만 직접적인 언어적 연속성을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프로토엘람 문자가 사용된 시기와 확실하게 읽을 수 있는 엘람어 자료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존재합니다. 네 번째 문제는 기호 자체의 변형입니다. 프로토엘람 점토판을 작성한 서기들은 현대의 인쇄된 글자처럼 항상 정확하게 같은 모양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점토에 빠르게 기호를 적다 보니 같은 기호가 사람이나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서로 비슷하게 생긴 두 기호가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연구자는 먼저 “이 두 모양이 같은 글자의 변형인가, 다른 글자인가?”부터 판단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잘못 분류하면 이후의 통계 분석도 모두 흔들릴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문제는 작성자의 실수입니다. 이것은 의외로 매우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고대의 서기라고 해서 항상 완벽하게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계산을 틀리거나 기호를 잘못 쓰고, 다시 수정한 흔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현대 연구자는 점토판의 규칙을 찾아야 하는데 원본 자체에 오류가 있다면 이상한 패턴이 언어의 규칙인지 서기의 실수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실제로 프로토엘람 연구에서는 계산 방식과 기록상의 불일치를 분석하면서 서기 교육이나 행정 시스템의 수준까지 추정하기도 합니다. 결국 자료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프로토엘람 점토판은 많지만 대부분 비슷한 성격의 짧은 행정 기록입니다. 이것은 수천 개의 영수증을 가지고 사라진 언어를 해독하려는 것과 비슷합니다. 숫자와 반복 구조는 보이지만 그 언어로 된 소설이나 편지, 사전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문자가 아니라 회계 코드였을까, 프로토엘람이 풀리면 알 수 있는 것들
프로토엘람 문자를 둘러싼 가장 흥미로운 질문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 과연 완전한 문자였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토판에 기호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기록 기호가 인간의 말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의 회계 장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숫자와 화폐 기호, 상품 코드, 회사 약어만으로도 상당한 정보를 기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125 / 30kg / 500’이라는 기록은 해당 시스템을 아는 사람에게는 명확한 의미가 있지만 일상 언어의 문장은 아닙니다. 프로토엘람 기록 역시 이런 방식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정 기호가 사람이나 기관을 나타내고 다른 기호가 상품을 나타내며 숫자가 수량을 표시했다면 굳이 동사나 문법적인 표현을 기록할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행정가는 점토판을 보면서 이미 맥락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호만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프로토엘람 문자를 현대적인 의미에서 ‘해독한다’는 목표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각각의 기호가 어떤 소리로 발음되었는지를 찾는 것보다 행정 시스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일부 기호가 실제 사람 이름이나 지명, 직책의 발음을 기록했다면 문자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순수한 그림 기호와 숫자, 언어를 표현하는 요소가 함께 사용된 과도기적인 체계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프로토엘람 문자는 문자 탄생의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시와 역사책을 쓰기 위해 문자를 만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먼저 양과 곡물의 수량을 기록하고, 사람과 상품을 구분하고, 세금과 배급을 관리하기 위한 기호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더 복잡한 정보를 표현해야 하면서 기호가 언어의 소리를 기록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을 수 있습니다. 프로토엘람 문자와 비슷한 시대의 메소포타미아 초기 기록 역시 이런 변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왜 메소포타미아의 문자 전통은 훗날 방대한 설형문자 문헌으로 발전했는데 프로토엘람 문자 전통은 사라졌을까요? 이것 역시 중요한 미스터리입니다. 프로토엘람 체계는 일정 기간 사용된 뒤 더 이상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후 이란 지역에서는 다른 문자 전통이 등장합니다. 사회 구조가 변하면서 기존 행정 시스템이 붕괴했을 수도 있고, 다른 문자 체계가 들어와 대체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치적 변화나 교역망의 변화가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문자 체계는 한 번 발명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영원히 살아남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행정 조직과 교육 시스템이 사라지면 문자도 함께 사라질 수 있습니다. 프로토엘람 문자가 완전히 해독된다면 우리는 당시 이란 지역의 사회 구조를 훨씬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점토판에 기록된 사람이 노동자인지 관리자인지, 특정 기관이나 가문인지 알 수 있다면 사회 계층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상품 기호를 정확하게 식별한다면 어떤 곡물과 가축, 생산물이 경제에서 중요했는지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역 이름을 알아낼 수 있다면 도시와 정착지 사이의 물류 네트워크도 복원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에게 지급된 배급량이 기록되어 있다면 노동 조직과 생활 수준을 연구하는 자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숫자와 정보를 이해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숫자를 보편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숫자 기록 방식은 문화와 시대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프로토엘람 점토판은 인간이 추상적인 수량을 어떻게 기호로 바꾸고 복잡한 경제 활동을 관리했는지를 보여주는 초기 사례입니다. 현대에는 고해상도 디지털 이미지와 3D 촬영,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점토판의 기호를 표준화해 비교하면 사람이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반복 패턴을 찾을 수 있습니다. 특정 기호가 어떤 숫자 체계와 함께 등장하는지, 어떤 기호 조합이 특정 도시에서 집중적으로 사용되는지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데이터가 쌓이면 기호의 의미를 조금씩 좁혀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와 컴퓨터가 모든 것을 자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컴퓨터는 ‘이 기호는 곡물 관련 기록에서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을 찾아낼 수 있지만 그것이 보리인지 밀인지, 창고인지 배급인지 결정하려면 고고학적 증거가 필요합니다. 결국 프로토엘람 해독은 언어학뿐 아니라 수학사와 경제사, 고고학, 컴퓨터 과학이 함께 풀어야 하는 거대한 퍼즐입니다.
5,000년 전 사람들의 장부는 남았지만 그들의 말은 사라졌다
프로토엘람 문자가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이 기록을 완전히 모르는 것도, 완전히 아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숫자의 일부는 이해합니다. 계산 방식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많은 점토판이 회계와 행정에 사용되었다는 사실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기록에는 가축이나 곡물, 노동력과 관련된 정보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단계에서 문이 닫힙니다. 숫자 옆의 기호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하게 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5,000년 전의 회계 장부를 발견했는데 숫자만 현대어이고 상품명과 사람 이름은 모두 정체불명의 코드로 적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20’이라는 숫자는 읽지만 그것이 양 20마리인지 곡물 20단위인지, 누구에게 지급된 것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불완전한 이해가 프로토엘람 문자를 더욱 흥미롭게 만듭니다. 이 기록은 화려한 왕의 무덤이나 거대한 신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대인의 삶을 보여줍니다. 누군가는 매일 창고로 들어오는 곡물을 계산했습니다. 누군가는 가축의 숫자를 확인했습니다. 누군가는 노동자들에게 지급할 물품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서기는 젖은 점토판 앞에 앉아 자신들이 공유하던 기호와 숫자를 이용해 그 정보를 남겼습니다. 당시 그 기록은 전혀 신비로운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행정 담당자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장부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록 체계를 사용하던 사회가 사라지고 5,000년이 흐르자 평범한 회계 장부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미해독 문서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기록의 의미가 문자 자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글을 읽기 위해서는 그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과 언어, 사회적 규칙이 함께 필요합니다. 프로토엘람 점토판은 살아남았지만 그 규칙을 설명해 줄 사람은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미래에 새로운 점토판이 발견되면서 상황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문자와 프로토엘람 문자가 같은 내용을 기록한 자료가 발견된다면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특정 인물이나 도시의 이름을 두 문자로 함께 적은 작은 봉인 하나만 발견되어도 여러 기호의 의미를 연결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또는 이미 박물관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점토판을 새로운 기술로 분석하면서 지금까지 놓쳤던 패턴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프로토엘람 문자가 애초에 인간의 말을 완전하게 기록한 문자가 아니라 제한적인 회계 기호 체계였다면 모든 기호를 하나의 문장처럼 번역하는 날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신 우리는 각각의 기호가 행정 시스템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를 점점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역시 하나의 해독입니다. 프로토엘람 문자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 기호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왜 기록을 필요로 했으며, 숫자와 물품을 관리하는 단순한 표식은 어떻게 언어를 기록하는 문자로 발전했을까요? 어쩌면 인류가 문자를 만들게 된 가장 강력한 동기는 위대한 신화나 아름다운 시를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창고에 곡물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5,000년 전 점토판에 찍힌 작은 숫자와 기호는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회계 기록이 아니라 인간이 기억을 자신의 머리 밖으로 꺼내 저장하기 시작했던 거대한 변화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남았습니다. 계산도 남았습니다. 점토판도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기록했던 사람들의 언어와 규칙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프로토엘람 문자는 오늘날까지 ‘읽을 수 있는 것과 읽을 수 없는 것의 경계’에 서 있는 가장 독특한 고대 기록 체계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마지막 연결고리가 발견된다면 우리는 5,000년 전 고대 이란의 관리들이 매일 점토판에 무엇을 기록했는지 훨씬 선명하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거대한 전설 속 영웅이 아니라 곡물을 세고 가축을 관리하며 복잡한 사회를 운영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일지도 모릅니다. 다음 글에서는 추천 순서에 따라 ‘디스필리오 명판(Dispilio Tablet), 7,000년 전 나무판에 새겨진 기호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일까?’를 주제로, 그리스의 신석기 호수 마을에서 발견된 나무판과 그 위에 남겨진 수수께끼의 기호, 그리고 이 유물이 문자 역사의 시작을 바꿀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