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무렵 그리스의 작은 섬 안티키테라 근처 바다에서 해면을 채취하던 잠수부들이 고대 난파선을 발견했습니다. 오늘은 안티키테라 기계(Antikythera Mechanism), 2,000년 전 고대 그리스인은 어떻게 톱니바퀴로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했는지에 대해서 알아 볼 예정입니다. 바닷속에는 조각상과 도자기, 동전, 유리제품을 비롯한 수많은 고대 유물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관심은 주로 아름다운 청동상과 대리석 조각에 쏠렸습니다. 그런데 인양된 물건 사이에는 겉보기에는 특별할 것이 없는 녹슨 청동 덩어리 하나가 끼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누구도 이 물건이 고대 기술의 역사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부식된 청동 조각이 갈라지면서 내부에서 톱니바퀴가 발견됐습니다.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여러 개의 기어가 서로 맞물려 움직이는 정교한 기계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안티키테라 기계(Antikythera Mechanism)’라고 불리는 유물입니다. 현재 연구에 따르면 이 장치는 기원전 2세기 무렵 제작된 고대 그리스의 천문 계산 장치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손으로 손잡이나 회전 장치를 움직이면 내부의 청동 톱니바퀴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돌아가면서 날짜에 따른 태양과 달의 움직임, 달의 위상, 달력 주기, 일식과 월식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시기 등을 표시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전면부에 당시 알려진 행성들의 움직임까지 표시하는 복잡한 구조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어만 약 30개에 이르지만 원래 장치에는 훨씬 더 많은 기어가 들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특정한 천문학적 입력값과 주기를 기계적인 톱니비로 변환해 결과를 보여주는 계산기였던 셈입니다. 이 때문에 안티키테라 기계는 흔히 ‘세계 최초의 아날로그 컴퓨터’라고 불립니다. 물론 현대 컴퓨터처럼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입력하거나 여러 종류의 문제를 계산하는 범용 컴퓨터는 아니었습니다. 특정 천문 주기를 계산하도록 만들어진 기계식 계산 장치라는 의미에서 ‘아날로그 컴퓨터’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기계가 약 2,000년 전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정교한 기어 장치가 중세 이후의 기계식 시계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안티키테라 기계는 그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이미 수십 개의 청동 톱니바퀴를 이용해 복잡한 천문 주기를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왜 이런 기계를 만들었을까요? 단순히 별을 관찰하기 위한 도구였을까요? 달력과 종교 축제의 날짜를 계산하기 위한 장치였을까요? 아니면 당시 천문학자들이 이해한 우주의 구조 자체를 작은 상자 안에서 움직이도록 만든 일종의 기계식 우주 모형이었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복잡한 기계를 만들 수 있었다면 왜 비슷한 장치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요?

난파선 속 녹슨 청동 덩어리, 어떻게 고대의 천문 계산기라는 사실이 밝혀졌을까?
안티키테라 기계가 발견된 장소는 그리스 본토와 크레타섬 사이에 위치한 안티키테라섬 근처입니다. 1900년 해면을 채취하던 잠수부들이 우연히 고대 난파선을 발견했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인양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난파선에서는 청동상과 대리석 조각, 도자기와 여러 고급품이 발견되었고 배는 로마 세계를 향해 귀중한 물건을 운반하던 중 침몰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안티키테라 기계도 그 화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처음 인양됐을 당시 장치는 바닷물과 부식 때문에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고 여러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02년 그리스 고고학자 발레리오스 스타이스가 한 조각에서 톱니바퀴를 발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고대 유물 내부에 정교한 기어가 들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연구자들은 사진 촬영과 X선 촬영을 이용해 내부 구조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세기 중반 과학사학자 데릭 드 솔라 프라이스는 안티키테라 기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 이것이 단순한 천문 관측 도구가 아니라 톱니바퀴를 이용해 천문 주기를 계산하는 기계라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기술이 발전하면서 훨씬 더 많은 정보가 드러났습니다. 2000년대에는 고해상도 표면 촬영과 3차원 X선 단층촬영이 활용되었고 부식된 금속 내부에 숨어 있던 톱니 수와 구조뿐 아니라 육안으로 읽기 어려웠던 수천 개의 그리스어 문자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안티키테라 기계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장치 자체에 일종의 설명문이 새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덮개와 여러 부분에 기록된 글은 어떤 천문 현상을 표시하는지, 각각의 눈금이 무엇과 관계되는지를 복원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기계는 원래 전체의 약 3분의 1 정도로 추정되며 80개가 넘는 파편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가장 큰 파편인 ‘Fragment A’에서는 여러 기어와 축을 지지했던 구조가 남아 있고 다른 파편에서도 독립적인 기어와 글자가 발견됩니다. 당시 기계의 전체 크기는 대략 작은 상자 정도였던 것으로 복원됩니다. 나무로 만든 상자 안에 청동 기어와 다이얼이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사용자가 손잡이나 축을 돌리면 특정 날짜에 해당하는 천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계산기는 숫자를 전자적으로 처리하지만 안티키테라 기계에서는 톱니 수 자체가 수학을 담당했습니다. 예를 들어 서로 맞물린 두 톱니바퀴의 톱니 수가 다르면 하나가 한 바퀴 돌 때 다른 기어가 일정한 비율로 회전합니다. 이런 기어를 여러 단계 연결하면 서로 다른 주기의 움직임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관찰되는 태양과 달의 주기가 다르더라도 각 주기에 대응하는 기어비를 설계하면 하나의 입력 회전에 따라 여러 지침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티키테라 기계는 단순히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는 장치라기보다 이미 축적된 천문 지식을 기계적인 계산으로 변환하는 장치였습니다. 사람이 하늘을 보고 결과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날짜를 입력하면 기계가 특정 천문 주기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 특징 때문에 ‘컴퓨터’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컴퓨터와 가장 중요한 차이도 여기에 있습니다. 안티키테라 기계에는 프로그램을 바꿔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이 없었습니다. 애초에 정해진 천문학적 관계를 톱니바퀴에 물리적으로 새겨 넣은 전용 계산기였습니다. 그렇다고 기술적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수학적 관계를 물리적인 기계 구조로 변환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습니다. 연구를 통해 살아남은 약 30개의 기어가 확인되었고 원래 구조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기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결국 2,000년 전 장인은 수학과 천문학의 주기를 단순히 책이나 계산표에 적는 데 그치지 않고 청동 톱니바퀴의 비율로 변환해 실제로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태양과 달, 일식까지 계산했다, 톱니바퀴는 어떻게 하늘의 움직임을 재현했을까?
안티키테라 기계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기어가 많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기어들이 표현한 천문학적 정보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장치의 뒷면에는 두 개의 커다란 나선형 눈금판이 존재했던 것으로 복원됩니다. 그 가운데 위쪽 눈금은 메톤 주기(Metonic cycle)를 표현했습니다. 메톤 주기는 약 19태양년이 235삭망월과 거의 일치한다는 천문 주기입니다. 달을 기준으로 한 달력과 태양을 기준으로 한 계절을 장기간 맞추기 위해 매우 중요한 관계였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달력은 단순한 날짜표가 아니었습니다. 농사의 시기, 종교 축제, 정치 행사와 각종 의례를 결정하는 기반이었기 때문입니다. 안티키테라 기계는 이런 긴 주기를 톱니바퀴를 통해 계산하고 표시했습니다. 뒷면의 또 다른 중요한 눈금은 사로스 주기(Saros cycle)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로스 주기는 약 18년 11일 정도가 지나면 태양과 지구, 달의 상대적 위치가 비슷한 조건으로 반복되어 일식이나 월식의 패턴이 재현되는 주기입니다. 기계의 눈금에는 특정 시기에 일식이나 월식이 나타날 가능성을 알려주는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안티키테라 기계가 현대 천문학처럼 정확한 위치를 계산해 특정 지역에서 몇 시 몇 분에 일식이 시작되는지를 예측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대에 알려져 있던 주기적 패턴을 이용해 어느 달에 식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를 나타내는 방식에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약 2,000년 전 기계가 천문 주기를 자동으로 따라가면서 식의 가능성을 표시했다는 것은 놀라운 기술입니다. 달의 움직임을 표현한 구조는 더욱 복잡합니다. 달은 지구를 완벽한 원형 궤도로 일정한 속도로 도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지구에서 관찰하면 이동 속도가 변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히파르코스는 이런 불규칙성을 설명하기 위한 수학적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안티키테라 기계에서는 핀과 슬롯이 결합된 독특한 기어 구조를 통해 달의 움직임이 일정하지 않은 것처럼 표현한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단순한 일정 회전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 관측에서 나타나는 달의 속도 변화를 기계적으로 근사하려 했던 것입니다. 달의 위상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구체 또는 지시 장치를 이용해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변하고 다시 줄어드는 달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조가 있었던 것으로 복원됩니다. 사용자가 날짜를 움직이면 태양과 달의 위치뿐 아니라 그날 달이 어느 정도 차 있는지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여기에 고대 그리스의 경기 주기를 표시하는 눈금도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흔히 올림픽 경기 주기와 연결해 설명되는 기능으로, 천문 계산 장치가 달력과 사회적 행사의 시간 관리에도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행성은 어떨까요? 이 부분은 안티키테라 기계 연구에서 가장 흥미롭지만 동시에 가장 조심해서 설명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기계의 전면부는 상당 부분 사라졌기 때문에 실제 기어의 전체 구조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X선 단층촬영으로 읽어낸 비문에는 태양과 달뿐 아니라 당시 육안으로 알려졌던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과 관련된 설명이 존재합니다. 2021년 UCL 연구팀은 남아 있는 물리적 흔적과 비문, 기어의 톱니 수를 바탕으로 전면부에 이 행성들의 주기를 보여주는 복잡한 기계식 우주 모형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연구팀의 복원 모델에서는 여러 개의 동심원형 고리와 지침이 움직이면서 달과 태양, 행성의 위치를 표시합니다. 특히 비문에서 확인된 462년과 442년이라는 숫자는 각각 금성과 토성의 천문 주기와 연결되는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연구팀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적 방법을 활용하면 이런 주기를 기어비로 변환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전면 행성 장치는 반드시 구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뒷면의 메톤 주기와 사로스 주기처럼 실제 기어와 구조가 상당 부분 남아 있는 기능과 달리 전면부 행성 시스템은 사라진 부분이 많아 복원 모델에 의존하는 영역입니다. 즉 행성을 표시하는 기능이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강한 단서는 있지만 정확히 어떤 기어 구조였는지는 아직 연구와 논쟁의 대상입니다. 안티키테라 기계의 매력은 바로 이런 데 있습니다. 우리는 상당한 부분을 이해했지만 전체 설계도를 손에 넣은 것은 아닙니다. 연구자들은 2,000년 동안 바닷속에서 부식된 조각과 몇 글자의 비문, 남아 있는 톱니 수를 이용해 거대한 기계 퍼즐을 역으로 맞추고 있습니다.
이런 기계를 만들 수 있었다면 왜 비슷한 물건은 사라졌을까?
안티키테라 기계를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기원전 2세기의 장인이 이렇게 정교한 기어 장치를 제작할 수 있었다면 왜 비슷한 기계들이 수백 년 동안 계속 발견되지 않을까요? 안티키테라 기계가 갑자기 아무런 기술적 배경 없이 탄생한 단 하나의 기적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고대 문헌을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 세계에는 여러 종류의 기계 장치가 존재했습니다. 톱니바퀴의 원리는 이미 알려져 있었고 물을 이용한 시계, 펌프, 자동 장치, 천문 관측 기구 등 다양한 기계 기술이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천체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장치를 만들었다는 고대 기록도 전해집니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 역시 태양과 달, 행성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기계적 천구 장치에 관한 내용을 남겼습니다. 따라서 안티키테라 기계가 완전히 고립된 기술이었다기보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고대 기계 제작 전통의 한 사례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재료입니다. 안티키테라 기계의 핵심 부품은 청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청동은 고대와 중세 사회에서 매우 가치 있는 금속이었습니다. 오래된 기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면 그대로 보존하기보다 녹여 새로운 도구나 무기, 동전, 장식품을 만드는 데 재활용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나무 상자는 썩어 없어지고 얇은 청동 기어는 부식되거나 재활용되기 쉬웠습니다. 안티키테라 기계가 살아남은 이유 역시 역설적으로 난파선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배가 침몰하면서 기계가 바닷속에 묻혔고 인간이 금속을 회수해 다시 녹일 기회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닷물 속에서 심각하게 부식되었지만 바로 그 사고 덕분에 일부라도 오늘날까지 남았습니다. 기술 전승의 문제도 생각해야 합니다. 매우 복잡한 기계를 제작하려면 단순히 청동을 다룰 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천문학적 주기를 이해하는 사람과 그 수치를 기어비로 변환할 수 있는 수학 지식, 정교한 톱니를 제작할 수 있는 금속 가공 기술이 결합되어야 합니다. 이런 장치는 일반적인 생활용품처럼 수많은 공방에서 대량 생산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특정한 학자와 장인 집단, 후원자와 전문 제작 환경이 필요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조직이나 수요가 사라지면 기술 자체가 크게 축소되거나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티키테라 기계 이후 기어 기술이 완전히 사라져 천 년 동안 아무도 톱니바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기계 기술은 다양한 형태로 계속 존재했고 이후 이슬람 세계와 중세 유럽에서도 자동 장치와 천문 기계, 시계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다만 안티키테라 기계처럼 복잡한 천문 계산을 수행했던 고대의 구체적인 장치가 현재까지 살아남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사의 연결 고리에 큰 공백이 존재합니다. 누가 안티키테라 기계를 만들었는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로도스와 같은 헬레니즘 천문학 중심지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오랫동안 논의되었고 히파르코스의 천문학과 연결하려는 연구도 존재하지만 제작자를 특정할 결정적인 서명은 없습니다. 아르키메데스와 직접 연결하는 대중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안티키테라 기계 자체가 아르키메데스의 작품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제작 시기는 아르키메데스가 사망한 뒤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아르키메데스가 만든 컴퓨터’라고 소개하는 것은 과장입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천재 한 명보다 헬레니즘 시대의 학문적 환경입니다. 바빌로니아에서 축적된 천문 주기 지식,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과 천문 이론, 뛰어난 금속 가공 기술이 한 장치 안에서 결합되었습니다. 특히 일식 계산에 활용된 주기는 바빌로니아 천문학의 오랜 관측 전통과 연결되고 달의 불규칙한 움직임을 표현하는 기계 구조는 그리스 천문 이론과 연결됩니다. 안티키테라 기계는 한 문명의 고립된 발명품이라기보다 여러 세대와 여러 지역에서 축적된 지식을 기계라는 하나의 형태로 압축한 물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안티키테라 기계는 단순한 ‘고대의 신기한 기계’가 아니라 지식이 어떻게 기술로 변환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고대인은 하늘을 바라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작은 상자 안에서 움직이게 만들었다
안티키테라 기계가 처음 바닷속에서 건져졌을 때 그것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 같은 녹슨 청동 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아름다운 청동상과 대리석 조각 사이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한 물건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덩어리 안에서 톱니바퀴가 발견되면서 고대 기술의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약 2,000년 전 누군가는 수십 개의 청동 기어를 만들고 각각의 톱니 수를 정교하게 계산했습니다. 하나의 축을 돌리면 다른 기어가 일정한 비율로 움직였고 여러 단계의 기어를 통과하면서 태양과 달의 주기가 서로 다른 속도로 표시되었습니다. 19년에 걸친 달력 주기가 기계 안에 들어갔고 약 18년에 걸친 식의 반복 주기도 톱니바퀴로 표현되었습니다. 달이 차고 기우는 모습과 일정하지 않은 움직임까지 기계적으로 재현하려 했습니다. 일부가 사라져 정확한 구조는 아직 논쟁 중이지만 전면에는 당시 알려진 행성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장치까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대적인 표현을 사용하면 천문학적 데이터를 기계적인 알고리즘으로 변환한 셈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안티키테라 기계를 현대 노트북이나 전자식 컴퓨터와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메모리에 프로그램을 저장하지도 않았고 사용자가 새로운 계산식을 입력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특정 입력인 날짜 또는 회전에 따라 미리 설정된 수학적 관계를 기어가 계산하고 여러 출력으로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는 ‘기계식 아날로그 계산기’ 또는 ‘아날로그 컴퓨터’라는 표현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안티키테라 기계가 더욱 놀라운 이유는 그 복잡성뿐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있습니다. 밤하늘에서 관찰되는 움직임은 너무 느리고 복잡합니다. 달은 매일 조금씩 위치가 달라지고 행성은 별 사이를 이동하다 때때로 방향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며 일식과 월식은 오랜 간격을 두고 나타납니다. 고대인은 수백 년에 걸친 관측 자료 속에서 이런 현상이 완전히 무작위가 아니라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누군가는 더 놀라운 생각을 했습니다. ‘이 주기를 톱니바퀴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큰 톱니와 작은 톱니의 비율을 조합하면 1년과 한 달, 19년과 18년 같은 서로 다른 시간의 주기를 같은 장치 안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결국 안티키테라 기계는 하늘을 축소해 상자 안으로 옮기려 했던 시도였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컴퓨터 화면에서 태양계 시뮬레이션을 실행하듯 당시 사람들은 청동 기어를 돌려 하늘의 질서를 재현했습니다. 누가 이 기계를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천문학자의 연구 도구였을 수도 있고 부유한 후원자가 소유한 교육·전시용 기계였을 수도 있으며 항해나 달력 계산과 관계된 기능이 있었을 가능성도 논의됩니다. 다만 일반적인 가정용품이 아니었다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작에는 천문학과 수학, 금속 가공을 결합한 높은 수준의 전문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미스터리는 이런 기술을 가진 사회에서 제작된 다른 장치들이 어디로 갔느냐는 것입니다. 안티키테라 기계만 존재했다면 이렇게 복잡한 기계가 아무런 선행 기술 없이 갑자기 등장했다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여러 개의 비슷한 장치가 존재했다면 우리는 그 가운데 대부분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청동은 재활용되었을 것이고 나무는 썩었으며 전쟁과 화재, 도시의 파괴를 거치면서 수많은 기계가 사라졌을 것입니다. 안티키테라 기계는 배와 함께 침몰했기 때문에 오히려 살아남았습니다. 인간에게는 재난이었던 난파가 2,000년 뒤 고고학자에게는 고대 기술을 보존하는 타임캡슐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연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뒷면의 주요 기능을 상당 부분 이해했고 고해상도 촬영과 X선 단층촬영으로 이전에는 읽을 수 없었던 글자까지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전면부의 전체 기어 구조는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행성 표시 장치가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작동했는지는 여러 복원 모델을 통해 연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완성형 안티키테라 기계의 모습은 발견 당시 그대로 남아 있는 기계의 모습이 아니라 남은 파편과 비문, 천문학적 주기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이 재구성한 모델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이 구분이 중요합니다. 안티키테라 기계는 과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놀라운 유물이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2세기의 그리스인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하늘을 이해했고 그 지식을 손바닥보다 조금 큰 톱니바퀴의 세계 안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2,000년 뒤 우리는 녹슨 기어의 톱니를 하나씩 세면서 그들의 생각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어쩌면 안티키테라 기계가 보여주는 가장 놀라운 사실은 ‘고대에 컴퓨터가 있었다’는 문장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진짜 놀라운 점은 인간이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의 복잡한 움직임을 숫자로 바꾸고 그 숫자를 다시 기계로 만들어 미래를 계산하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추천 순서에 따라 ‘세계의 기묘한 고고학 유물 ⑥ 바그다드 배터리(Baghdad Battery), 2,000년 전 항아리는 정말 전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였을까?’를 주제로, 이라크에서 발견된 토기 항아리와 구리 원통·철봉의 정체, 산성 액체를 넣으면 실제로 전압이 발생한다는 실험이 왜 ‘고대 배터리’의 증거가 되지는 않는지, 도금 장치설과 종교·보관 용기설을 둘러싼 논쟁, 그리고 유명한 고대 전기 기술 이야기가 고고학적으로 어디까지 확인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