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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배터리(Baghdad Battery), 2,000년 전 항아리는 정말 전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였을까?

by 밀크럽려니 2026. 9. 5.

전기는 현대 문명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은 바그다드 배터리(Baghdad Battery), 2,000년 전 항아리는 정말 전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였는지 알아 볼 예정입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냉장고와 조명은 물론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전자기기가 전기에 의존합니다. 학교에서는 일반적으로 18세기와 19세기에 이루어진 전기 연구를 배우고, 1800년 알레산드로 볼타가 만든 볼타 전지가 초기의 실용적인 전지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배웁니다. 그런데 만약 그보다 약 2,000년 전에 이미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 장치가 존재했다면 어떨까요? 20세기 이라크에서 발견된 작은 토기 항아리 하나가 바로 이런 상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높이가 약 14센티미터 정도인 평범해 보이는 항아리 안에는 구리로 만든 원통과 철봉이 들어 있었습니다. 구리와 철이라는 서로 다른 금속이 함께 배치된 구조를 본 연구자들은 흥미로운 가능성을 떠올렸습니다. 항아리 안에 식초나 포도주 같은 산성 액체가 들어 있었다면 두 금속 사이에서 작은 전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조만 놓고 보면 간단한 갈바니 전지와 비슷하게 작동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유물은 이후 ‘바그다드 배터리(Baghdad Battery)’ 또는 ‘파르티아 배터리(Parthian Battery)’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고대인들이 전기를 이용해 금속을 도금했다는 주장부터 종교 의식에서 작은 전기 충격을 만들어 신비로운 경험을 제공했다는 가설까지 등장했습니다. 심지어 고대 문명이 전구나 전기 장치를 사용했다는 이야기와 연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 유물이 실제로 전지였다는 직접적인 고고학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항아리 안에서 전해질로 사용했다고 확정할 수 있는 액체의 잔여물이 확인된 것도 아니고 전선을 연결하기 위한 명확한 단자나 여러 전지를 직렬로 연결했던 흔적이 발견된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고대 이라크에서 이 장치를 이용해 전기도금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업장이나 관련 도구, 문헌 기록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현대인이 비슷한 구조의 복제품에 산성 액체를 넣으면 전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지만 그것만으로 고대인이 실제로 같은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배터리의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유물을 배터리처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바그다드 배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고고학의 가장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물건이 특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물건이 실제로 그 기능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바그다드 배터리(Baghdad Battery), 2,000년 전 항아리는 정말 전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였을까?
바그다드 배터리(Baghdad Battery), 2,000년 전 항아리는 정말 전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였을까?

항아리 안에 구리 원통과 철봉이 들어 있었다, 왜 사람들은 이것을 배터리라고 생각했을까?

바그다드 배터리라고 불리는 유물은 1930년대 오늘날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의 후주트 라부아(Khujut Rabu)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발견 당시 이 지역은 고대 파르티아 및 사산 왕조 시대와 관련된 유적이 존재하는 곳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후 이라크 국립박물관에서 일하던 독일인 빌헬름 쾨니히(Wilhelm König)가 유물의 구조에 관심을 가지면서 ‘고대 전지’라는 해석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유물의 구조 자체는 매우 단순합니다. 작은 토기 항아리 내부에 얇은 구리판을 말아서 만든 원통이 들어 있고 그 중심에는 철봉이 위치합니다. 구리 원통과 철봉은 서로 직접 닿지 않도록 배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설명됩니다. 항아리 입구에는 역청, 즉 비투멘 계열의 물질이 사용된 흔적도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 전기화학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이 구조는 상당히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서로 다른 두 금속을 전해질에 넣으면 두 금속 사이의 화학적 반응 차이 때문에 전위차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구리와 철을 식초나 레몬즙처럼 이온이 이동할 수 있는 액체에 넣고 외부 회로로 연결하면 약한 전류가 흐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그다드 배터리를 본뜬 여러 복제품 실험에서도 산성 액체를 넣었을 때 작은 전압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고대 배터리’라는 유명한 가설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적으로는 한 단계 더 확인해야 합니다. 실제 유물 안에 어떤 액체가 들어 있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포도주나 식초처럼 전해질 역할을 할 수 있는 액체의 잔여물이 발견되고 철과 구리에서 전기화학적 반응의 특징적인 흔적까지 확인된다면 전지설은 훨씬 강력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알려진 자료만으로는 그런 직접적인 증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또한 전지를 실용적으로 사용하려면 전류를 어디론가 전달해야 합니다. 현대 배터리에는 양극과 음극을 외부 회로에 연결할 수 있는 단자가 존재합니다. 바그다드 유물에서도 철봉의 일부가 외부로 노출되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구리 원통과 외부 회로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연결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여러 개를 직렬로 연결하면 더 높은 전압을 만들 수 있지만 실제 유적에서 그런 연결 장치나 전선 시스템이 확인된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고고학적 원칙이 등장합니다. ‘작동 가능성’과 ‘역사적 사용 증거’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구멍이 뚫린 고대 돌에 실을 감으면 현대인이 그것을 직조 도구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고대인이 반드시 그 용도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로마 12면체의 뜨개질 도구설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복제품으로 어떤 기능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가설을 보여줄 뿐 실제 용도를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바그다드 배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항아리 안에 산성 액체를 넣으면 전압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2,000년 전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전기를 생산했다는 것은 별도의 증거가 필요한 역사적 주장입니다.

금속에 금을 입히기 위한 전기도금 장치였을까, 가장 유명한 가설의 문제점

바그다드 배터리가 실제 전지였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그 전기를 어디에 사용했는가?’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유명해진 가설이 전기도금입니다. 전기도금은 전류를 이용해 금속 표면에 다른 금속을 얇게 입히는 기술입니다. 오늘날에는 장신구와 전자부품, 자동차 부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됩니다. 만약 고대인이 작은 전지를 이용할 수 있었다면 은이나 구리 제품의 표면에 금을 얇게 입히는 데 활용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등장했습니다. 실제로 복제품 형태의 전지를 여러 개 연결하고 적절한 용액과 전극을 사용하면 간단한 전기도금 실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나 대중 서적에서는 바그다드 배터리의 용도가 전기도금이었을 가능성을 자주 소개합니다. 하지만 이 가설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주변 지역에서 금속 표면을 금이나 은으로 장식하는 기술이 존재했다고 해서 그것이 전기를 이용했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대 장인들은 전기가 없어도 금박을 붙이거나 열과 화학적 방법을 이용해 표면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수은을 이용하는 아말감 도금과 같은 기술도 후대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금으로 코팅된 고대 유물이 발견된다는 사실 자체는 전기도금의 증거가 아닙니다. 실제 전기도금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금속 표면의 미세구조와 화학적 특성이 전기화학적 증착과 일치하는지 분석해야 하고 동시에 전해액을 담은 용기, 전극, 전선을 비롯한 작업 도구가 함께 발견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바그다드 배터리와 확실하게 연결되는 전기도금 작업장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전압과 전류입니다. 하나의 작은 항아리가 만들어내는 전압은 매우 낮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작업에 활용하려면 여러 개를 연결하거나 오랜 시간 사용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 항아리를 연결한 흔적이나 금속 도선, 작업대 같은 부수적인 장비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까지 그런 시스템 전체가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가설이 등장합니다. 전기를 종교적 또는 치료적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주장입니다. 여러 전지를 연결해 사람이 만졌을 때 약한 전기 충격을 느끼게 하고 그것을 신비로운 종교 체험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대 사람들이 전기의 원리를 몰랐더라도 몸에 느껴지는 효과 자체를 이용했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직접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고대 문헌에서 특정 항아리를 만졌더니 충격이 느껴졌다는 기록이 확인된 것도 아니고 종교 시설에서 이런 유물이 반복적으로 발견된 것도 아닙니다. 더 과장된 주장에서는 바그다드 배터리를 고대 전구와 연결하기도 합니다. 고대 이집트 덴데라 신전의 부조를 전구로 해석하는 주장과 결합해 고대 문명이 전기 조명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로 확대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류 이집트학에서는 이 부조를 종교적·신화적 이미지로 해석하며 고대 전기 조명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배선, 전구, 발전 장치 등의 고고학적 증거는 없습니다. 바그다드 배터리 하나가 존재한다고 해서 고대 사회에 전기 산업이 존재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결국 전기도금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현대인이 유물의 구조를 보면서 이미 알고 있는 기술을 연결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가능하다’와 ‘실제로 했다’ 사이에 상당히 큰 증거의 간격이 존재합니다.

배터리가 아니었다면 무엇이었을까, 두루마리 보관 용기라는 해석은 왜 등장했을까?

바그다드 배터리를 둘러싼 논쟁에서 의외로 중요한 것은 주변 지역에서 발견된 비슷한 구조의 유물들입니다. 고고학자는 하나의 물건만 보고 용도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같은 시대와 지역에서 발견된 유사한 물건을 비교하고 어떤 장소에서 무엇과 함께 발견됐는지를 살펴봅니다. 바그다드 인근의 셀레우키아(Seleucia)와 크테시폰(Ctesiphon) 등에서는 구리나 청동 원통과 관련된 용기들이 발견된 사례가 알려져 있으며 일부 연구자들은 이런 물건들이 문서나 주술적·종교적 내용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보관하는 용기와 관계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실제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작은 금속판이나 파피루스, 양피지 등에 글을 기록하고 이를 말아 용기에 넣어 보관하는 전통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주문이나 보호 문구를 기록한 물건을 용기 안에 넣는 관습도 여러 시대와 지역에서 확인됩니다. 그렇다면 바그다드 배터리의 구리 원통과 철봉 역시 전극이 아니라 어떤 물질이나 두루마리를 보호하기 위한 구조였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항아리 입구를 역청으로 봉했다는 점도 내용물을 장기간 보존하기 위한 용기라는 설명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해석 역시 완벽하게 증명된 것은 아닙니다. 최초 발견 과정의 기록이 현대적인 기준에서 충분히 정밀하지 않았고 유물의 정확한 고고학적 맥락에도 불확실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바그다드 배터리로 알려진 원본 유물은 이라크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박물관 약탈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회수 여부가 명확하지 않아 원본을 현대적인 분석 장비로 다시 조사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연구에 매우 큰 손실입니다. 오늘날의 분석 기술을 사용하면 금속 표면에 남은 부식물과 미세한 잔류물, 토기 내부에 흡수된 유기물 등을 조사해 과거 어떤 물질이 들어 있었는지 새로운 단서를 얻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본을 자유롭게 재검토할 수 없다면 수십 년 전에 작성된 기록과 사진, 기존 분석 자료에 의존해야 합니다. 바그다드 배터리의 연대 역시 대중적으로는 ‘약 2,000년 전 파르티아 시대’라고 간단하게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발견 맥락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파르티아 시대인지 이후 사산 왕조 시대인지에 대한 불확실성도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2,000년 전 파르티아인이 만든 세계 최초의 배터리’라는 문장은 현재 증거보다 훨씬 강한 주장입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고대 또는 후기 고대 이라크 지역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는 토기·구리·철 구조의 유물이 발견되었고 20세기 연구자가 이것을 전기화학 전지로 해석하면서 유명해졌지만 실제 용도와 정확한 연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역설적으로 바로 이 불확실성이 바그다드 배터리를 더욱 흥미로운 유물로 만듭니다. 만약 이것이 실제 배터리였다면 고대 기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발견이 됩니다. 반대로 배터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현대 기술에 익숙한 시선 때문에 고대 물건의 의미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해온 셈이 됩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질문을 남기는 유물입니다.

전기를 만들 수 있는 물건과 전기를 만들기 위해 만든 물건은 다르다

바그다드 배터리 이야기를 처음 접하면 결론은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약 2,000년 전 작은 항아리 안에 구리와 철을 넣었고 여기에 식초나 포도주를 부으면 전기가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고대인은 이미 배터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여기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금속을 전기도금했고 종교 의식에서 전기 충격을 사용했으며 심지어 전기 조명까지 사용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 증거가 가장 잘 지지하는 설명입니다. 바그다드 배터리와 비슷한 구조를 복제해 전압을 발생시키는 것은 가능합니다. 서로 다른 금속인 철과 구리를 적절한 전해질에 넣으면 전위차가 만들어지는 것은 현대 전기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구조가 전지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 ‘고대인이 전지를 만들기 위해 이 구조를 제작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배터리라는 주장을 입증하려면 몇 가지 중요한 증거가 추가로 필요합니다. 항아리 내부에서 전해질의 잔류물이 확인되거나 금속 표면에서 반복적인 전기화학 반응의 흔적이 발견될 수 있습니다. 여러 개의 항아리를 연결했던 전선이나 단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전기도금 작업장에서 동일한 장치가 반복적으로 발견되거나 전기화학적 방식으로 도금되었다고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금속제품이 함께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고대 문헌에서 두 금속과 특정 액체를 이용해 이상한 힘을 얻는 방법을 설명한 기록이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증거 가운데 하나라도 명확하게 확인된다면 바그다드 배터리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그런 결정적인 연결고리가 부족합니다. 반대로 두루마리나 특별한 물건을 보관하는 용기였다는 설명 역시 모든 문제를 해결한 확정된 정답은 아닙니다. 결국 이 유물의 용도는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바그다드 배터리는 고대 기술의 놀라움을 보여주는 유물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고대 유물을 해석할 때 얼마나 쉽게 현대인의 관점을 투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아리 안의 구리와 철을 보는 순간 배터리를 떠올립니다. 이미 배터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약 2,000년 전 이 물건을 만든 사람은 완전히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미래의 고고학자가 현대의 어떤 물건을 발견했을 때 원래 용도와 전혀 다른 기능을 실험으로 재현한 뒤 그것을 실제 사용법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과 비슷한 오류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고대 전지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필요도 없습니다. 과학의 역사에서 인간은 이론을 이해하기 전에 자연 현상을 경험적으로 이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대인이 전자나 전압이라는 개념을 몰랐다고 해서 두 금속과 액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우연히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만약 손으로 만졌을 때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거나 금속 표면에 변화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면 원리를 몰라도 반복해서 활용했을 가능성은 논리적으로 존재합니다. 문제는 가능성이 아니라 그것을 입증할 증거입니다. 그래서 바그다드 배터리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방법은 ‘2,000년 전의 배터리가 발견됐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배터리처럼 작동할 수 있는 구조의 고대 유물이 발견되었지만 실제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만든 것인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설명할 때 이 유물은 더 흥미로워집니다. 만약 미래의 발굴에서 여러 개의 같은 항아리가 전선과 함께 발견된다면 지금까지의 기술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문서가 들어 있는 동일한 구조의 완전한 용기가 발견된다면 ‘고대 배터리’라는 유명한 이야기는 역사 속 오해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답을 결정할 것은 상상력이 아니라 새로운 유물과 고고학적 맥락입니다. 약 2,000년 전 누군가는 작은 토기 항아리 안에 구리 원통과 철봉을 넣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설명이 사라지고 물건만 남으면서 우리는 그 이유를 잃어버렸습니다. 바그다드 배터리의 진짜 미스터리는 고대인이 전기를 사용했느냐는 질문만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는 설명서가 사라진 물건의 용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는가?’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추천 순서에 따라 ‘세계의 기묘한 고고학 유물 ⑦ 파에스토스 원반이 아닌 고대 로마의 수수께끼 유물, 로마의 청동 손(Hand of Irulegi와 구분되는 Roman Bronze Hands), 사람 손 모양의 청동 유물은 치료 도구였을까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이었을까?’가 아니라, 앞서 다룬 미해독 문자 시리즈와 중복되지 않도록 ‘세계의 기묘한 고고학 유물 ⑦ 고대 로마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Roman Multi-tool), 1,800년 전 로마인은 숟가락·포크·칼을 하나의 도구에 넣었을까?’를 주제로, 피츠윌리엄 박물관에 남아 있는 독특한 은제 다기능 도구의 구조와 용도, 여행용 식기라는 해석,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실용적이었던 로마인의 휴대용 도구 문화를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