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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Roman Multi-tool), 1,800년 전 로마인은 숟가락·포크·칼을 하나의 도구에 넣었을까?

by 밀크럽려니 2026. 9. 5.

오늘날 여행이나 캠핑을 갈 때 여러 기능을 하나에 넣은 멀티툴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고대 로마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Roman Multi-tool), 1,800년 전 로마인은 숟가락·포크·칼을 하나의 도구에 넣었을지 알아 볼 예정입니다.

작은 몸체에 칼과 가위, 병따개, 드라이버 같은 도구를 접어 넣은 형태입니다. 필요할 때 원하는 도구만 펼쳐 사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휴대성이 뛰어납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디어가 현대인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피츠윌리엄 박물관에는 약 1,800년 전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매우 독특한 은제 도구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크기는 손바닥에 들어갈 정도지만 하나의 몸체에 여러 기능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한쪽에는 숟가락이 있고 몸체에는 접었다 펼칠 수 있는 칼날과 포크 형태의 도구가 달려 있으며 작은 스파이크와 주걱처럼 생긴 부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대인의 눈에는 놀라울 정도로 멀티툴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이 유물은 인터넷과 여러 대중 매체에서 ‘1,800년 전 로마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Roman Swiss Army Knife)’라는 별명으로 자주 소개됩니다. 물론 실제로 고대 로마인이 그렇게 불렀던 것은 아닙니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는 훨씬 후대에 등장한 현대 제품이므로 어디까지나 유물의 구조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붙인 별명입니다. 그렇다면 로마인은 왜 이렇게 많은 기능을 작은 은제 도구 하나에 넣었을까요? 여행 중 식사를 하기 위한 휴대용 식기였을까요? 부유한 사람이 연회에서 사용했던 고급 개인용 식기였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아직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다른 용도가 있었을까요? 특히 흥미로운 점은 각각의 부품이 무엇에 사용되었는지 모두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숟가락과 칼, 포크처럼 비교적 기능을 쉽게 추정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작은 스파이크와 주걱 형태의 부품은 정확한 사용법이 불분명합니다. 달팽이나 조개 같은 음식을 꺼내거나 작은 음식물을 집는 데 사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결국 이 작은 은제 도구는 단순한 ‘고대의 신기한 발명품’이 아닙니다. 약 1,800년 전 로마 사람들이 무엇을 먹었고 여행할 때 어떤 물건을 가지고 다녔으며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를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생활사 유물입니다.

고대 로마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Roman Multi-tool), 1,800년 전 로마인은 숟가락·포크·칼을 하나의 도구에 넣었을까?
고대 로마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Roman Multi-tool), 1,800년 전 로마인은 숟가락·포크·칼을 하나의 도구에 넣었을까?

숟가락부터 칼과 포크까지, 손바닥만 한 도구에 왜 이렇게 많은 기능을 넣었을까?

피츠윌리엄 박물관이 소장한 이 로마 시대의 다기능 도구는 대략 서기 200년에서 30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분류됩니다. 재료는 은이며 철제 칼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확한 출토 장소와 고고학적 발견 맥락은 알려져 있지 않아 누가 어디에서 사용했는지를 직접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구조만 보더라도 상당히 특별한 물건이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한쪽 끝에 고정된 숟가락입니다. 숟가락의 반대쪽에는 여러 개의 작은 도구가 몸체에 결합되어 있으며 필요할 때 펼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피츠윌리엄 박물관은 이 유물에 숟가락과 포크, 스파이크, 주걱 형태의 도구, 작은 픽, 철제 칼날 등 여러 기능이 결합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현대적인 멀티툴처럼 모든 부품이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물건에 여러 기능을 압축했다는 기본적인 발상은 상당히 비슷합니다. 특히 칼날을 접을 수 있다는 점은 휴대성을 고려한 설계였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날카로운 칼을 그대로 들고 다니는 것보다 사용하지 않을 때 몸체 쪽으로 접어 보관할 수 있다면 훨씬 안전하고 편리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숟가락과 포크, 칼을 하나의 물건으로 만들었을까요?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 가운데 하나는 여행용 개인 식기입니다. 로마 제국은 광대한 도로망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군인과 관리, 상인과 여행자들은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했고 장거리 여행에서는 숙박과 식사가 필요했습니다. 오늘날처럼 모든 장소에서 동일한 식기 세트를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기 때문에 개인이 작은 식기나 도구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충분히 실용적인 선택이었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도구에 여러 기능을 넣으면 별도의 칼과 숟가락을 각각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집니다. 하지만 이 유물을 평범한 로마 여행자의 캠핑 도구라고 생각하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재료가 은이라는 점입니다. 은은 값싼 생활용 금속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사회에서 은으로 만든 식기와 용기는 부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고급품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멀티툴의 원래 소유자는 상당한 경제력을 가진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군 고위 관계자나 부유한 상인, 관리, 상류층 여행자처럼 이동하면서도 개인용 고급 식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물건은 단순한 실용 도구와 사치품의 중간에 위치합니다. 휴대성을 높이기 위한 기능적 설계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은이라는 값비싼 재료를 사용해 소유자의 지위를 보여주는 물건이기도 한 것입니다. 현대에도 비슷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같은 기능을 가진 시계나 펜이라도 값비싼 재료와 정교한 제작 기술을 사용하면 실용품이면서 동시에 신분과 취향을 보여주는 물건이 됩니다. 로마 시대의 이 작은 멀티툴도 비슷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작은 스파이크와 주걱은 어디에 사용했을까, 로마인의 식탁을 보면 기능이 보인다

이 유물의 숟가락과 칼날은 용도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음식을 떠먹고 자르는 데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포크 형태의 도구 역시 음식을 집는 데 사용했을 가능성을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부품으로 시선을 옮기면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몸체에는 가늘고 뾰족한 스파이크와 작은 픽처럼 보이는 부품, 끝이 평평한 주걱 형태의 도구가 달려 있습니다. 이것들은 정확히 어디에 사용했을까요? 피츠윌리엄 박물관의 설명에서는 이런 도구들이 작은 음식물을 다루거나 껍데기에서 내용물을 꺼내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언급됩니다. 특히 달팽이처럼 껍데기 안에 들어 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늘고 뾰족한 도구는 상당히 유용했을 것입니다. 로마인들은 다양한 해산물과 조개류를 먹었고 달팽이 역시 식재료로 이용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식문화 자료를 보면 상류층의 연회에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고기와 빵뿐 아니라 굴과 조개, 생선, 달팽이 같은 다양한 음식이 등장합니다. 이런 음식을 먹으려면 단순한 숟가락과 칼만으로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껍데기 속 살을 꺼내거나 작은 조각을 집을 수 있는 뾰족한 도구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여러 종류의 식사 도구를 하나에 결합했다는 설명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서도 ‘이 스파이크는 달팽이 전용 도구였다’고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사용법을 설명한 고대 문서가 이 유물과 함께 발견된 것이 아니고 정확한 출토 맥락도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이 형태를 보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기능을 추정하는 것입니다. 작은 주걱 모양의 부품 역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음식에 소스를 바르거나 작은 내용물을 긁어내는 데 사용했을 수도 있고 식사와 관련된 다른 작업을 위한 도구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성은 고고학 유물을 해석할 때 매우 흔합니다. 현대의 포크나 숟가락처럼 형태와 용도가 명확하게 연결되는 물건은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오래전에 사라진 생활 습관과 연결된 작은 도구는 정확한 기능을 복원하기 어렵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로마인들이 실제로 다양한 형태의 개인용 식기를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로마 시대의 숟가락 가운데 ‘코클레아르(cochlear)’라고 불리는 유형은 한쪽에는 작은 숟가락이 있고 반대쪽 끝은 길고 뾰족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이 뾰족한 부분은 달팽이나 조개 같은 음식의 내용물을 꺼내는 용도와 연결해 설명됩니다. 즉 숟가락과 뾰족한 픽을 하나의 식기에 결합하는 발상 자체는 로마 식문화에서 낯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숟가락과 젓가락, 포크와 나이프를 각각 독립적인 식기로 생각하지만 로마인에게는 하나의 식기에 두 가지 기능을 넣는 것이 충분히 자연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츠윌리엄 박물관의 다기능 도구는 이런 발상을 극단적으로 확장한 물건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숟가락 하나에 픽을 붙이는 것을 넘어 칼과 포크, 여러 개의 작은 도구를 하나의 몸체에 결합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로마인이 현대 멀티툴을 발명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의 실제 식문화와 휴대용 도구 설계가 결합된 결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정말 ‘고대 로마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였을까, 단 하나의 유물이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못하는 것

이 유물이 유명해진 가장 큰 이유는 ‘Roman Swiss Army Knife’라는 별명입니다. 사진을 보면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은 몸체에서 칼과 포크 같은 여러 도구가 펼쳐지는 모습이 현대의 멀티툴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이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몇 가지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먼저 고대 로마에 현대적인 의미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가 존재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스위스 군용 접이식 칼은 19세기 말의 군용 장비에서 발전했습니다. 로마의 유물과 직접적인 기술 계보가 연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두 물건은 서로 독립적으로 ‘여러 기능을 하나에 결합하면 휴대하기 편하다’는 동일한 문제에 대한 비슷한 해결책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은 시대와 지역이 달라도 같은 문제를 만나면 비슷한 발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이 유물 하나를 근거로 모든 로마인이 이런 멀티툴을 가지고 다녔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현재 알려진 이 물건은 상당히 특이한 사례이며 은으로 제작된 고급품입니다. 로마 제국 전역에서 수천 개의 동일한 멀티툴이 발견된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이것을 ‘로마인의 일반적인 여행 필수품’이라고 소개하면 증거보다 지나친 일반화가 됩니다. 오히려 매우 부유한 개인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희귀한 물건이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세 번째 문제는 정확한 출토지가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고고학에서 유물의 맥락은 물건 자체만큼 중요합니다. 만약 이 도구가 군사 요새에서 개인 장비와 함께 발견되었다면 군인이나 장교의 여행용 식기라는 해석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호화로운 저택의 연회 공간에서 발견되었다면 상류층 식탁용품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덤에서 발견되었다면 소유자의 신분과 장례 관습까지 연결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발굴 맥락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질문에 답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우리는 물건의 형태와 재료, 비슷한 로마 시대 식기를 비교해 용도를 추정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 유물의 존재 자체가 보여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로마 시대의 장인은 여러 기능을 작은 물건 하나에 결합하는 복잡한 설계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접히는 철제 칼날을 은제 몸체와 결합하고 서로 다른 형태의 식사 도구를 제한된 공간에 배치하려면 상당한 금속 가공 능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것을 주문한 사람 역시 ‘여러 개의 물건을 따로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 하나로 합치면 편리하다’는 휴대성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멀티툴을 현대적 발명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오늘날의 제품이 산업 생산과 정밀 기계 기술을 바탕으로 훨씬 복잡해졌기 때문이지 여러 기능을 하나로 합친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현대에 처음 등장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로마의 이 작은 은제 도구는 인간이 아주 오래전부터 공간과 무게를 줄이고 하나의 물건에서 더 많은 기능을 얻으려 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1,800년 전에도 사람들은 ‘하나로 합치면 편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고대 유물을 바라볼 때 우리는 종종 거대한 신전이나 황금 보물, 미스터리한 종교 의식에 관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때로는 작은 생활용품 하나가 과거 사람들의 생각을 훨씬 가까이 보여줍니다. 피츠윌리엄 박물관에 남아 있는 로마 시대의 다기능 도구가 바로 그런 물건입니다. 이 유물에는 거대한 왕의 이름도 없고 제국의 역사를 기록한 긴 비문도 없습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누가 사용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약 1,800년 전 누군가가 숟가락과 칼, 포크와 여러 개의 작은 도구를 하나의 물건에 넣기로 결정했다는 사실만큼은 남아 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하면 고대인과 현대인의 거리가 갑자기 가까워집니다. 여러 물건을 따로 들고 다니기 귀찮았을 수도 있습니다. 여행 중 식사를 할 때 자신만의 식기가 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값비싼 은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연회에서 독특한 물건을 꺼내 손님들의 관심을 끌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작고 편리하면서 여러 기능을 가진 물건’에 대한 욕구는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유물을 소개할 때는 몇 가지 사실을 구분해야 합니다. 이것이 현대 스위스 아미 나이프의 직접적인 조상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모든 로마인이 이런 도구를 사용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각각의 작은 부품이 정확히 어떤 음식에 사용됐는지도 완전히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정확한 출토 장소와 발견 맥락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소유자의 신분과 실제 사용 환경을 복원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물 자체는 존재합니다. 은으로 만든 몸체와 철제 칼날, 숟가락과 포크를 비롯한 여러 기능이 실제로 하나의 작은 물건에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물건은 과장된 미스터리를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너무나 인간적인 발상에 있습니다. ‘이것들을 하나로 합치면 더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스마트폰 하나에 전화와 카메라, 지도, 계산기, 음악 플레이어와 수많은 기능을 넣습니다. 캠핑을 갈 때는 칼과 가위, 드라이버를 하나의 멀티툴에 넣습니다. 기능을 통합하고 휴대성을 높이려는 인간의 욕구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강해졌지만 그 생각의 뿌리는 매우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로마 시대의 이 은제 도구는 그 오래된 흔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동시에 이 유물은 고고학에서 ‘평범한 물건’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줍니다. 황제의 동상은 권력과 정치에 대해 알려주지만 숟가락과 칼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여행했으며 어떤 불편을 해결하려 했는지를 알려줍니다. 역사책에서는 로마 황제와 전쟁, 제국의 흥망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실제 로마인들도 매일 아침 일어나 음식을 먹고 물건을 챙기고 여행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누군가는 오늘날 우리가 멀티툴이라고 부를 만한 작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약 1,800년이 흐른 뒤 우리는 그것을 보고 놀라지만 정작 원래 주인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편해서 사용하는 식기라고 말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추천 순서에 따라 ‘세계의 기묘한 고고학 유물 ⑧ 코스타리카의 거대한 돌구슬(Stone Spheres of the Diquís), 천 년 전 사람들은 어떻게 완벽해 보이는 거대한 돌구슬을 만들었고 왜 땅 위에 배치했을까?’를 주제로, 코스타리카 남부에서 발견된 수백 개의 석구와 제작 방법, 실제로 얼마나 완벽한 구형인지, 마을과 권력의 상징이라는 해석, 그리고 ‘외계인이 만들었다’거나 ‘잃어버린 문명의 천문 지도’라는 유명한 주장에 고고학적 근거가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